'늑대' 기업가정신​

2018-07-20

 



김회평 논설위원

서커스장에는 늑대가 없다. 호랑이도, 독수리도, 심지어 뱀까지 있지만, 늑대는 없다. 늑대는 길들지 않는다.

늑대는 ‘작전’을 쓰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사냥감이 눈에 들어와도 미동 없이 끈질기게 기다리다 한순간 전광석화처럼 해치운다. 대장 늑대를 중심으로 척후·유인·매복·포위·기습 전법을 구사하고, 지형과 날씨까지 이용한다고 한다. 자기보다 훨씬 강한 맹수들을 물리치고 초원의 주인이 된 연유다. 늑대는 덫에 걸리면 제 입으로 다리를 끊어내고 달아난다. 작전 중 누가 크게 다치는 일이 생기면 대장 늑대가 물어 죽인다. 대열을 흩트리지 않으려는 고육책이다.

유럽을 휩쓴 흉노·돌궐·몽골은 모두 초원을 누빈 유목민이다. 칭기즈칸도 늑대를 스승 삼았다. 초원에서 평생 맞닥뜨린 늑대와 실전을 통해 전투력과 전략을 키웠다. 초원에서 태어난 말의 70% 이상은 1년 안에 늑대에게 희생된다. 살아남은 말은 날랠 수밖에 없다. 몽골이 출병할 땐 이런 말을 기병 1인당 4∼5마리씩 끌고 가 바꿔 타고, 부상한 말은 군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하루 천 리를 가는 기동성의 비결이다.

냉혹한 늑대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다. 무한 생존전쟁 무대에서는 기민하고, 치밀하고, 두려움 없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중국 정보기술(IT) 업체 화웨이는 공개적으로 ‘늑대 기업’을 표방한다. 1987년 직원 5명으로 창업한 런정페이(任正非·74)는 30년 만에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로 키웠고, 올 2분기 삼성전자에 이어 스마트폰 판매 2위에 올랐다. 그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늑대처럼 민감한 후각과 불굴의 진취성, 팀플레이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은 1.4% 지분만 갖고 대부분을 직원 몫으로 돌렸다. 돈방석에 앉으면 초심을 잃고 현실에 안주할 수 있다며 비(非)상장을 고집한다. 대신 성과를 못 내는 직원 5%를 매년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앞둔 국내 통신장비시장에도 화웨이가 강력한 변수로 등장했다. 화웨이는 국내 업체보다 5G 기술력에서 3개월 이상 앞서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한다. IT 최강자 삼성전자도 통신장비에선 화웨이에 치이는 형세다.

늑대 문화는 중국판 기업가정신이다. 한때 한국 기업의 성장 DNA였던 도전과 스피드는 이제 야성 충만한 중국 혁신기업의 무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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