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 Information Technology - 화이자 맞서려면 ‘토종 데이터’뿐 ​

2013-06-23

최남우 인실리코젠 대표는 생물정보기술 기업의 부침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유전체 분석과 신약·육종·식품 등이 융합하는 ‘6차산업’을 내다본다.

▎최남우 대표는 생명을 분석한 데이터의 가치는 무한하다고 말했다. 배경 화면은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기본단위인 DNA 구조다. DNA 2중 나선구조는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박사가 처음 발견했다. DNA의 구조·기능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생명현상의 과학적 구조가 하나씩 밝혀졌다.

생물정보기술(BIT)은 일반인에겐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분야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 DNA 염기서열 등 전문용어는 듣는 이를 기죽게 한다. 생물정보기술 서비스기업 인실리코젠의 최남우 대표는 대뜸 미국 영화배우 앤절리나 졸리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녀는 최근 예방 차원에서 양쪽 유방을 절제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졸리는 5월 14일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나의 의학적 선택(My Medical Choice)’에서 ‘의사는 내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50%라고 얘기했다’며 ‘유방절제술을 받은 지금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가족 병력과 본인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예측한 유방암 발병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유방 절제 수술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며 “외국에서는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유전체 정보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유방 절제 수술로 유방암 공포를 극복한 앤절리나 졸리가 6월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남편 브래드 피트와 영화 ‘월드워Z(World War Z)’ 시사회에 참석했다.

 

 

 

 

경기 수원시 수원첨단벤처밸리에 자리한 인실리코젠은 국내 생물정보기술 분야의 대표적 벤처기업이다. 2000년대 초반 바이오벤처 붐으로 수많은 기업이 ‘대박’을 꿈꾸며 등장했지만 이후 우르르 무너졌다. 인실리코젠은 생물정보 테마를 가진 회사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최 대표는 “생물정보기술은 많은 인내심과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산업”이라며 “생명 분석 데이터의 가치가 무한하기에, 어렵지만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말했다.

모든 생명의 속살 읽는다

국내에서도 정보기술(IT)과 의학·유전학을 융합한 기술이 속속 등장한다. 최근엔 연구실을 나와 산업 분야에 두루 쓰이기 시작했다. 인실리코젠도 생물정보 분석에 의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립농업과학원·국립축산검역본부·질병관리본부·국립수산과학원·국립문화재연구소·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이 주요 고객이다. 2008년 10억원이었던 연매출은 지난해 38억원으로 성장했다. 최근 5년 연매출 성장률은 평균 31%다. 매출 규모는 작지만 탄탄한 성장세를 이루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생물정보기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속살을 읽어 이를 데이터로 모으고 분석한다. 예전에는 엑스레이나 컴퓨터 단층촬영, 조직슬라이드를 통해 질병을 진단했다면 이젠 축적된 데이터와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해 유전자 변이를 파악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유전자가 어떤 질병에 영향을 주는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축적된 정보를 신약·육종·식품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2010년 성공한 ‘한우(韓牛) 유전체 서열분석을 통한 단일염기변이 완전해독’은 인실리코젠의 대표적인 성과다. 영남대·충북대·씨앨씨바이오A/S·솔젠트 등과 협력해 한우의 지놈(유전체) 해독을 통해 전체 유전정보를 처음 발굴했다. 단일염기변이는 유전적 특성을 결정한다. 최 대표는 “한우 유전체에서 310만개에 달하는 단일염기변이를 발굴했는데 이 중 72%가 새롭게 밝혀진 것”이라며 “2.8GB에 이르는 방대한 한우 유전체 정보가 질병·번식·육질 연구와 품종판별·생산이력제 실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돼지 이력추적 전산시스템 구축도 눈에 띈다. 인실리코젠은 충북대 연구팀과 함께 국내산 돼지고기의 생산이력정보 추적시스템, 수입돈육 식별법을 개발했다. 부모돼지의 DNA 정보를 관리해 농장에서 출하된 비육돈과 소매점에서 채취한 돼지고기의 DNA 정보를 비교하면 실제 어느 농장에서 생산됐는지를 알 수 있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을 이용해 현장에서 자료를 관리할 수 있고, 축산환경·질병 등 농장정보 관리도 가능하다.

최 대표는 “의외로 생물정보기술은 우리 사회 곳곳에 접목돼 있다”며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찾기 사업에도 DNA 분석을 이용한 혈연분석 기술이 활용됐다. 비슷한 기술이 실종아동의 부모 찾아주기 시스템에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국내 산업발전을 이끈 것처럼 유전체 분석은 다양한 산업에 고속도로를 까는, 일종의 사회 간접자본(SOC)”이라고 강조했다.

유전체 분석은 여러 산업의 SOC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최 대표는 졸업 후 소프트 관련 기업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했다. 국내 기업의 주문으로 미국의 인포맥스(InforMax)가 개발한 생물정보 관련소프트웨어를 구입하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인포맥스의 소프트웨어는 생물학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 전에 데이터를 시뮬레이션 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기능에 순간 매료됐다”며 “이를 계기로 생물정보기술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도서관에서 분자생물학 등을 공부하고, 실험실을 찾아 현장감도 익혔다. 그는 “스스로 전문가가 아니라 비즈니스맨이라고 생각했다”며 “연구개발은 전문가가 맡으면 되기에 박사급 인재를 영입해 전문성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학계·연구소에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명 인실리코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같은 가상 환경에서의’를 의미하는 신조어(In silico)와 유전자를 의미하는 젠(Gene)을 조합했다. 업계에서는 흔히 ‘인코’라고도 부른다.

최 대표는 사업 초기 투자 유치 유혹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사상누각’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주변에 창업투자사 돈을 받아 사업을 키우는 사람이 많았지만 규모가 작더라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국내 생물정보기술은 앞으로도 5~10년 더 데이터를 모아야 산업화 수준에 오를 수 있다. 10년간 투자자에게 돌려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은 신용이 중요한데 투자자에게 허풍을 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 ‘생물정보’라는 키워드는 절대 놓지 않으면서도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 결과 지난해부터 회사 통장에 잔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연구개발의 여력이 생기면서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유전체 연구는 1999년 정부 주도로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사람뿐 아니라 작물과 미생물 등 유전체를 연구하는 사업단이 속속 꾸려졌다. 그럼에도 유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과 투자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지난해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유전체 연구 수준은 최고 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절반 정도(57.7%)에 불과하며 기술 격차는 4.2년이다. 우리나라 정부의 생명공학 지원 예산 중 유전체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0.9%에 불과해 일본(5.8%)이나 미국(1.6%)보다 낮다.

최 대표는 “박근혜정부 들어 창조경제·6차산업 이야기가 많은데 생물정보기술을 활용하면 이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물정보기술은 유전적 특성에 맞춘 식단을 제공하는 등 현대판 동의보감 역할도 가능하다. 실내공기에서 분자를 채취해 바이러스 유무를 파악한 후 자동으로 이를 조절하는 건축물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침 정부도 내년부터 8년간 수천억원을 유전체 연구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람과 동·식물, 미생물 등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분석해 의료 및 생명자원으로 활용한다.

인실리코젠은 최근 한국 고유종 유전자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최 대표는 “농업생물공학기업 몬산토, 제약회사 화이자 등 해외 대기업은 엄청난 돈을 투자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 연구비는 그 한 기업 연구비의 10% 수준”이라며 “이들이 국내 생물정보기술 시장을 잠식한다면 맞설 수 있는 건 우리 고유종에 대한 데이터 뿐”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대기업이 접근하기 힘든 ‘토종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최초 한우 유전체 분석에 이어 가금·양돈·해조류·식물·미생물 등의 유전체 분석을 진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최 대표는 인실리코젠의 생물정보기술을 바탕으로 육종분석·육종개량 사업 계획도 세웠다. 그는 “고유 종자를 개발해 국내에서는 수확량을 늘려 식량안보에 대비하고, 밖으로는 종자를 수출해 로열티를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생물정보기술 (Bio information Technology·BIT) 생명공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생물정보시스템 기술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생물학 데이터를 저장·분석·해석한다. 바이오 전자소자, 바이오 지능시스템, 바이오컴퓨터, 바이오칩, DNA칩, 바이오센서, 생체정보단말기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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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298533?aid=298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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