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식품 ③] -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2013-12-16

화끈한 세일즈… 기적 만든 ‘인간 오뚝이’

 

한국 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서른여덟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남자한테 참 좋은데~’ 광고 카피로 1200억 원 매출 신화를 만든 김영식의 ‘천호식품’이다.

 

   
▲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

 

1997년 12월, 그 많던 직원도 모두 나가고 4600㎡나 되는 공장에 단 4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 회장은 생산과 관리, 판매까지 모두 직접 해야만 했다. 절망스러웠지만 김 회장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비록 경매에 부쳐진 상태였지만 공장도 있고 매장도 있으니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가격 파괴였다. 확실한 가격 파괴만이 살길이었다. 우선 제품 박스와 파우치 등 재고가 많이 남아있던 ‘강화사자발쑥진액’부터 팔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60팩들이 한 박스에 18만 원 하던 것을 5만 원에 팔기로 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펄쩍 뛰었다.

 

“사장님 말도 안됩니다! 그 가격에 팔면 어느 세월에 그 많은 빚을 갚겠습니까?”

 

그러나 비싼 가격을 고수할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일단 많이 팔아 바람을 일으키는게 중요했다. 김 회장은 이 제품의 반응을 보기 위해 우선 지인들부터 찾아 나섰다. 그 해 12월 23일 동아대 최고 경영자과정 동기 송년회가 열렸다. 그때는 IMF 시절이라 송년 모임도 조촐했다. 그는 그 자리에 제품 두 박스를 들고 나갔다. 그러고는 모임이 끝날 무렵 불쑥 일어나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쑥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쑥은 예로부터 만병을 고친다고 했습니다. 쑥은 성질이 따뜻해 속이 찬 사람에게 그렇게 좋고 간장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는 쑥을 따라갈 만한 게 없습니다. 쑥은 혈액 순환을 돕고 변비를 없애는 데에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합니다. 쑥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게 바로 강화도에서 자란 사자발쑥입니다. 그 쑥으로 만든 이 제품의 가격이 18만 원인데 5만 원에 판매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렇게 하면 잘 팔릴 것 같습니까?”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김 회장의 동기들이 “내가 좀 사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 때 모인 동기는 모두 25명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부산 공장에 전화를 걸어 “얼마나 팔렸을까?”하고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이 대답했다. “한 다섯 박스 파셨나요?” 김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쉰다섯 박스, 275만 원어치다. 당장 발송!”

 

김 회장은 송년회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뒤 쑥이 해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998년 새해를 맞아 일기장과 수첩, 명함 등 글자를 쓸 수 있는 곳에 ‘쑥을 팔자’는 슬로건을 펜으로 썼다. 휴대전화 액정에도 ‘쑥을 팔자, 못 팔면 죽는다!’라고 표시해뒀다.

 

강남역 지하도에서 전단을 뿌리다

그는 곧 서울로 올라와 직접 판매에 나섰다. 넓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월세 60만 원짜리 작은 사무실로 이사를 마친 터였다. 사무실이 입주한 빌딩 이름은 ‘정촌빌딩’이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사업해서 큰 돈을 벌어 서초동으로 이사를 했다가 쫄딱 망해 다시 옮겨온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정촌빌딩 주인과 안부를 묻는 사이다. 김 회장은 광고 전단을 만들어 뿌리기로 했다. 잘나갈 때 아내가 선물해준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130만 원을 빌렸다. 이때부터 시작된 김 회장의 천호식품 단독 세일즈는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매일 일기를 썼기 때문이다.

 

그의 어느 날 일기 내용이다.

아침 6시 30분이면 여관에서 나와 서울 강남역 지하도 입구로 출근을 했다. 일명 찌라시(전단)를 돌리는 아줌마 부대 옆에서 나도 찌라시를 돌렸다. 8시 30분까지 부지런히 돌리고 사무실로 향했다. 퇴근 시간에는 전철을 탔다. 전철표 한 장만 있으면 이 전철 저 전철 옮겨 다니며 전단을 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전철 처음 칸에서 시작해 마지막 칸까지 선반에 전단을 올려놓고 다녔다. 밤 10시까지 매일 그렇게 했다. 항상 가방에 전단을 넣고 다니면서 식당, 골목길, 전봇대 틈새, 승용차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공간에 일일이 전단을 꽂아놓았다.

 

김 회장은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무조건 쑥 얘기를 꺼내고 전단을 건넸다. 가령 싸구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서도 손님들이 있으면 전단을 나눠주고 설명했다. 비행기 안에서도 전단을 돌렸다. 승무원이 “고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하고 막았지만 그는“이 전단을 안 뿌리면 나 죽어요. 이 비행기 못 탑니다. 쑥이 얼마나 좋습니까? 다음에 돈 벌어서 내가 한 박스 선물 할게요”하고 양해를 구하며 전단을 돌렸다.

 

10년째 천호식품 광고 모델인 탤런트 이순재 씨와의 인연도 그 무렵 시작됐다.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만난 이순재 씨는 김 회장이 쑥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꺼내며 열 번을 토하자 그를 믿는 고객이 돼줬다. 그러다 어느 날 김 회장은 이순재 씨를 찾아가 광고모델이 돼 달라고 간청했다. 모델료는 나중에 벌어서 주겠다고 했다. 이순재 씨는 두말하지 않고 기꺼이 응해줬다.

 

2년 만에 매출 100배 신장시켜

그 결과 김 회장이 세일즈를 시작한 첫 달인 1월 1100만 원 매출을 올렸다. 2월에는 1900만 원, 3월에는 3300만 원이었다. 김 회장이 세일즈에 뛰어든지 1년이 지나자 매출은 5억 원으로 뛰었고 그 해 6월에는 9억6000만 원까지 올라갔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공장 규모에 비춰 거의 정상 수준을 회복하자 천호식품의 판매 곡선은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강화사자발쑥진액에 이어 1999년 6월 ‘사슴한마리’라는 건강식품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하면서 완전하게 재기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연간 매출 100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2년 만에 매출이 백 배 이상 올라갔다.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편지를 받다

김 회장은 파산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한 지 1년 11개월 만에 20억 원 상당의 빚을 모두 갚았다. 압류 당했던 집도 다시 찾았다. 17년 동안 써왔던 어음은 반납한 뒤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슴한마리 이외에도 산수유환 등 연이어 히트 제품을 만들어 냈다. 특히 산수유환은 전국이 들썩일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그렇게 대박이 나자 서울 감남구 역삼동에 서울 사옥도 짓게 됐다. 산수유환은 유명 한의사와 연구실 직원들에게 남자의 정력을 증강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시제품을 만들게 했다. 시제품을 주변의 지인들에 나눠 준 뒤 반응을 살폈다.

 

사람들의 반응은 섭취한 지 15일이 지나면서부터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함께 시제품을 섭취한 김 회장 역시 몸으로 느꼈다. 그는 즉시 연구실 직원들에게 “이건 대박감이다. 제품을 가장 좋게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상품이 출시된 뒤 2000년 12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부시가 제43대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김 회장은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세계에서 앞장서는 미국으로 이끌려면 정력이 좋아야 한다. 정력 증강에는 한국의 산수유가 그만이다. 산수유로 만든 제품을 선물로 보내니 한 번 드셔보라.

 

두 달 뒤 부시 대통령 부부의 친필 사인이 담긴 답장이 왔다. 카드로 된 답장을 받아 본 순간 ‘이걸 광고로 활용하면 대박이 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곧바로 광고를 냈다. 그랬더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렇게 탄생한 산수유 제품은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직접 말하기도 그렇고’란 강력한 광고 카피에 힘입어 천호식품의 강력한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결단코 페달에서 발을 떼지 마라

이후에도 그는 ‘통마늘진액’ 제품을 개발해 또 한번의 대박을 쳤다. 그는 제품이 출시되기 3년 전부터 마늘에 미쳐있었다. 통마늘진액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마시는 마늘’에 대한 건강식품이 없었다. 생마늘, 구운마늘, 마늘 오일은 있었지만 진액으로 뽑아낸 마늘은 없었다.

 

그는 몸에 좋지만 먹기 불편한 마늘의 맵고 매운내를 제거하면 대박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마늘 냄새와 매운맛을 제거하는 작업, 마늘에서 진액을 추출하는 연구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통마늘진액 건강식품이 출시되자 김 회장은 새벽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제품을 직접 마시고 몸이 좋아졌음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처음에는 동네 주위를 돌았고 점차 총 15㎞의 거리를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크게 무리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자 자신감을 얻은 김 회장은 아예 마라톤에 도전했다. 마라톤 예정 구간은 총 21㎞로 최종 목적지는 공장으로 가는 코스였다.

 

15㎞쯤 달리자 너무 목이 말라 이온음료를 마셨지만 너무 달아서 마시기가 좀 그랬다. 그 때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회사 연구실 상무가 통마늘진액을 한 잔 따라줬다. 김 회장은 순간 힘이 팍!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조금의 거짓도 없는 체험이라고 자부한다. 그렇게 2시간 26분 58초 만에 공장 문 앞에 도착하니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것 같았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결승점까지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마라톤은 비슷한 점을 가졌다. 달리다 지쳐 쉬는 동안에도 경쟁자들은 계속 달린다. 만약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그러나 김 회장은 마라톤은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만 1등이 될 수 있지만 인생은 누구나 1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천호식품을 세우고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몇 차례나 사업에 실패하고 위기를 겪으며 포기할까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기를 숱하게 반복했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 달린 결과가 바로 오늘의 천호식품을 만들었다. 때문에 김 회장은 ‘이곳이 정상이구나, 성공이구나!’ 하는 벅찬 감격을 느끼는 순간에도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한다고 말한다.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공을 잇는 또 다른 성공을 일궈내야 오늘의 천호식품과 같은 결과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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