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 유기공방, 왜 자꾸 문을 닫았을까​

2016-01-07

돈만큼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존재가 또 있을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돈이라는 사실에 동감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으리라. 부자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또한 없으리라. 이런지라 부자(또는 재벌)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귀감 아니면 비판의 대상으로 걸핏하면 오르내리곤 한다.
 

기사 관련 사진
 <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 책표지.
ⓒ 스타리치북스

 

<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스타리치북스 펴냄)는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부자 16명의 우여곡절과 성공을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저자에 의하면 옛날 부자들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부자들에 대한 기록들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조선의 부자들 그 사연들은 당연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보부상의 원조라는 백달원? 얼음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는 강경환? 아님 조선 운송업의 대부 엄웅찬? 누구 이야길 우선 들려줄까?' 이처럼 가벼운 고민을 했을 정도로 16인의 부자 저마다의 이야기들은 배울 것들이 많으며 또한 흥미롭다. 여하간 우선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유기를 만들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다는 유기장인 한순계이다.

"한순계는 유기를 굽는 장인에 지나지 않으나 효성이 깊고 학문이 높아 사람들의 모법이 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포상하기 위해 세금과 군역을 면제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개성유수 정언지가 조정에 장계를 올리려고 했다.

"옳지 않습니다. 집집마다 세금을 부과하고 사람마다 신역이 있는 것은 백성된 자의 본분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신역을 다하지 않는다면 어찌 조선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순계는 자신의 아들 셋을 모두 군대에 보내 군역을 마치게 했다. 한순계는 죽은 후 효성과 학문이 널리 알려져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다, 한순계는 유기 장인이지만 학문을 했다. 유기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으니 이웃을 배려했고, 금덩어리가 들어왔어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의 부는 창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었다. - <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에서.

여러 부자 중 한순계가 특히 인상 깊게 와 닿는 이유는, 얼마든지 그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세금면제와 병역면제라는 특혜를 자신이 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살리고자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자신의 공방을 한순간에 닫아 버림으로써 함께 사는 방법을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유기장인 한순계는 명종 때 태어나 선조 때 주로 활동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벼슬을 지낸, 대대로 무인집안 후손이다. <사서오경>같은 것도 매우 어린 나이에 막힘없이 술술 말할 정도로 영특해 과거 시험을 봐 출세를 꿈꿨다고 한다. 그런 그가 당시 천하게 여긴 장인이 된 것은 어린 소년일 때 병으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병든 어머니를 봉양해야 했기 때문.

14세에 품팔이를 하던 중 우연히 유기(놋그릇)의 세계를 알게 되고, 몇 년의 고생 끝에 장인이 되어 공방을 꾸리게 된다. 그는 유기를 정성껏 만들었는데, 원료를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공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당연히 품질 좋은 유기가 생산되었고, 한순계의 공방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음은 물론이다. 장인으로서 명성 또한 높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돈이 모아지자 한순계는 걸핏하면 공방의 문을 닫은 후 일꾼들에게 농사를 짓게 한다. 이런 그를 일부 사람들은 "부자 되는 것을 싫어하는 이상한 사람", "돈 좀 벌었다고 일을 우습게 아는 사람" 정도로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문을 여는 족족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건만 걸핏하면 문을 닫는 것이 누가 봐도 멍청한, 언뜻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순계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공방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변 공방들이 파리만 날리자 그렇게라도 소득을 나누고 싶었던 것. 이런 그가 어느 날 개울에서 목욕을 하다 자신의 공방 때문에 먹고 살길이 막막해 타향으로 떠나야만 하는 한 가족의 푸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한순계는 그 길로 공방 문을 닫아버리고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삶을 마감했다.

80년대 말, 돈이 된다 싶으면 새우젓장사도 서슴지 않는 우리나라 대기업(또는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이 이슈화 된 적이 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걸핏하면 그에 대해 곱지 않은 이야길 하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좀 잘 팔린다 싶으면 어느새 대기업이 개입한다. 그런 걸 보면 소비자로서 느끼는 대기업의 치졸하고 부도덕한 행위는 여전해 보인다. 장사가 좀 잘 된다 싶으면 임대료를 올리거나, 세입자를 몰아내는 주인들도 좀 많나.

이런지라 공방의 문을 열기만 해도, 아니 자신의 이름만 팔아도 어마어마한 돈을 쉽게 끌어 모을 수 있음에도 문을 아예 닫아버린 한순계의 부자정신은 매우 특별하게 와 닿는다. 한 개인이나 그 가족들이 축적할 수 있는 재산의 상한선을 스스로 조절한, 그리하여 부자의 3요소(축적, 증식, 분배) 중 하나인 '분배'를 바람직하게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부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보부상의 원조 백달원을 시작으로 우리에게 그나마 많이 알려진 임상옥과 제주 김만덕, 경주 최부잣집 외에 얼음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는 강경환, 조선 운송업의 대부 엄웅찬, 허울뿐인 선비의 체면을 버리고 집안을 위해 상인이 된 허홍, 김제평야처럼 넓은 마음으로 굶어 죽어가는 이웃들을 살핀 김제 장석보, 안중근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하는 동시에 민족교육에 이바지한 최재형 등의 부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장사하는 것을 왜 상업이라고 하고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이라고 하는가. 우리가 흔히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 상나라에서 비롯되었다. 주나라 전 왕조인 상나라 말기에 주왕이 요부 달기의 치마폭에 빠져 폭정을 하자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주왕은 전설적인 폭군으로 많은 충신을 죽이고 주자육림에 빠져 지냈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제후국인 주나라의 무왕이 강태공의 도움을 받아 제후국들과 연합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이때 무왕은 저 유명한 탕서를 지어 반계지신이라는 말을 남겼다. "병사들이여, 창을 세우고, 방패를 늘어세워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 법이다"

옛날부터 새벽에 우는 것은 수탉인데, 이때 암탉이 울면 불길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부터 여자가 나서는 것을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거나 집안이 기운다고 말하게 되었다.(…)주나라 무왕은 군사를 일으켜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대륙을 지배하게 되었다. 상나라 사람들은 나라 잃은 백성이 되어 중국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상나라 사람들이 전국을 떠돌자 이때부터 장사하기 위해 떠도는 사람들을 상나라 사람 같다고 하여 상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상인이라는 말은 엄격하게 말하면 떠도는 사람, 방랑자라는 의미가 된다. - <조선 부자 16인의 이야기>에서.

이 저자의 글 특징은 쉽고 주인공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다는 것.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걸어 들어가 입소문난 부자들과 함께 걸으며, 당시의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이 책에서 소개하는 16인의 부자들은 저마다 다른 지역에서,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조선 경제를 이끈 다양한 경제활동들과 장사 또는 부자와 관련한 흥미로운 것들을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3564

<저작권자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